대칭성 인류학


단지 구입(정확히는 누나로부터 선물받은)했다는 사실만으로 뿌듯하고 만족스러운 책, 카이에 소바주 시리즈. 정신과 시간의 방에 들어선 것 처럼, 남들이 스펙이라는 것에 목 메달고 하루가 모자라도록 바삐 뛸 무렵, 매일같이 세월아 네월아 놀던 시절에 처음으로 읽기 시작했으니, 벌써 5년 전이다. 그마저도 보람찬 퇴근길의 일환으로 본격적인 독서를 한 지난 6월 전까지 시리즈 5권 중, 2권도 다 읽지 못한 상태였으니, 그동안 그렇게나 긴 시간동안 이 책의 표지들만 봐왔다고나 할까. 어쨌든, 시리즈의 마지막 권, 5권 '대칭성 인류학' 을 읽고 있으니 조만간 해냈다는 만족감을 얻을 것 같다. '재미' 라는 것이 개인차가 크기에 쉽사리 추천하긴 어렵지만, 내게는 너무나 만족스럽고 또 큰 의미가 있는 책이다. 지금보다 더 책과 가까워 진다면, 아니 그러기 위해서, 저자의 다른 책들도 찾아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파도의 기원" (누토카족)

옛날에는 쉴 새 없이 바람이 불어댔다. 잔잔한 파도라는 것은 없이 항상 파도가 거칠게 밀려와, 해안에서 조개를 주울 수도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바람'들을 죽이기로 했다.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몇몇 동물들이 선발대로 파견됐으나 임무 완수에 실패하고 말았다. 가령 붉은배지빠귀의 경우 '바람'의 집으로 들어갈 수는 있었지만, 따뜻한 불을 쬐는 사이에 자신이 뭘 하러 왔는지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 불에 타서 붉은배지빠귀의 몸에는 붉은 반점이 생긴 것이다. 정어리의 경우는 좀 더 심해, 강풍에 밀려 돌아왔을 때는 아가미 가까이에 있던 눈이 코 언저리로 옮겨 붙어 있었다. 선발대의 마지막은 갈매기였다. 갈매기는 눈이 나빠지고 날개가 부러졌음에도 불구하고 필사적으로 노력했지만, 적의 마을 입구를 지키던 강풍 때문에 곶으로부터 떠밀려오고 말았다. 그래서 광동홍어와 가자미는 출입문 근처에서 지키고 있다가. '바람'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바람'들은 출입문에서 밖으로 나오자마자 가자미 위에서 미끄러져 넘어졌고, 그 바람에 광동홍어의 수염에 찔려 크게 다쳤다. 그때 서풍만은 저항을 하지 않았다. 서풍은 부드러운 바람이 부는 좋은 날씨를 보장하겠다고 약속했다. 서풍이 불면 하루에 도 번 조수 간만干滿이 생겨, 썰물이 발생한다. 그러면 인간은 해안으로 나가 조개를 주울 수 있게 된다. 그리하여 인간은 생존할 수 있었다. (레비 스트로스, '벌거벗은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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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되어 있는 상태 그대로 신화의 요소를 면밀히 살펴보면, 광동홍어는 두 종류의 명확한 특징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우선 납작한 물고기가 다 그렇듯이, 배 쪽은 미끈미끈하고 등 쪽은 거칠거칠합니다. 그리고 다른 동물과 싸워야 할 때 광동홍어가 도망치는 데 명수인 것은, 위나 아래에서 보면 몸집이 상당히 커 보이지만 옆에서 보면 무척 얇기 때문이죠. 몸집이 커 보이므로 적은 광동홍어를 화살로 맞혀 죽이는 건 일도 아니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겨낭이 끝난 바로 그 순간, 광동홍어는 별안간 방향을 바꿔 측면만을 보여주므로 맞힐 수가 없게 됩니다. 그런 식으로 해서 광동홍어는 도망쳐버립니다. 그러므로 광동홍어가 선택된 이유는 어느 각도에서 보느냐에 따라-사이버네틱스의 용어를 사용하면- 예스와 노 둘 중에서 한 가지 답만을 줄 수 있는 동물이라는 점에 있습니다. 한쪽은 긍정, 다른 한쪽은 부정이라는 불연속의 두 상태를 가질 수가 있는 거죠. 비유를 무리하게 강조할 생각은 없지만, 신화에서 광동홍어의 역할은 예스와 노라는 대답을 거듭해감으로써 상당히 어려운 문제를 풀어 가는 현대의 컴퓨터의 요소와 같습니다. (레비 스트로스, '신화와 의미')

남풍이 쉴 새 없이 부는 상태는 ++++++나 -----로 표현할 수 있을 겁니다. 한편 이따금 부는 상태는 ++--+-나 +-+-+-와 같이 표현할 수 있습니다. 전자와 같은 상태를 표현하는 경우 광동홍어의 몸은 별로 도움이 안 될 겁니다. 그 경우에는 정면에서 보나 측면에서 보나 형태가 크게 달라지지 않는 동물, 가령 화난 상태의 복어 같은 것이 가장 적합하겠지요. 그러나 후자의 상태를 표현하기에는 광동홍어나 가자미처럼 납작한 물고기가 가장 적합합니다. 이런 물고기가 팔딱거리며 수기신호를 뒤바꾸듯이 방향을 바꾸기만 해도, ++--+-나+-+-+-와 같은 상태는 쉽게 표현됩니다.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이라면 광동홍어를 여러 마리(비트)훈련시켜, 복잡한 내용을 정보화할 수 있는 '광동홍어 컴퓨터'와 같은 재미있는 장난감을 만드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카이에 소바주 5, '대칭성 인류학, 무의식에서 발견하는 대안적 지성'





by 사람해요 | 2011/08/16 00:40 | book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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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슈3花 at 2011/08/18 13:15
책, 책, 책을 읽읍시다!! 가끔 사보는 시사지조차도 다 읽지 못하는 제가 싫네요 ㅠ
Commented by 사람해요 at 2011/08/20 12:08
우옹 시사지...
Commented by 슈3花 at 2011/08/26 14:53
가끔(강조욤ㅠ)
Commented by 사람해요 at 2011/08/28 23:38
저는 출퇴근시 나눠주는 무가지마저도 안 봅니다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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